퇴근하여 아이들과 식사를 하다가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놈의 손이 튼 것을 보았다. 아내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제때 신경 쓰지 못한 반증이었다. 일단 욕조에 더운 물을 채운 다음 그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시켰다. 때가 불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겨울은 비 대신 눈이 내리고 옷을 많이 껴입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계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에너자이저 광고의 주인공처럼 지치지 않고 뛰어다녔다. 개천가에서 놀다가 바지가 온통 흙탕물에 젖어도 추운 줄 몰랐고 골목축구를 하다가 온몸에 땀이 젖어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던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을 바로 목욕이었다. 손이 터서 거친 장갑을 낀 것처럼 변하고 검은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목욕탕으로 가서 치료하는 것밖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 어른들의 손에 잡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와 진배가 없었다.
우리를 데려간 어른들은 다짜고짜 뜨거운 욕탕에 집어넣었다. 잘 눌은 누룽지처럼 견고하게 부착된 때를 불리기 위해서였지만 이건 완전히 초열지옥焦熱地獄이었다. 죄 지은 자들을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삶는다는 지옥의 형벌이 끝나면 이번에는 온몸을 한 꺼풀 벗겨내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퉁퉁 불은 여린 몸을 쇠로 만든 밤송이로 문질러대는 것 같은 고통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겠는가? 죽은 시체라도 그렇게 다루면 벌떡 일어나서 비명을 지를 것이 확실했다. 공정에 가까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갑자기 몸무게가 왕창 줄어든 것처럼 허전했다.
목욕탕에서 봉변을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고모뻘 되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떤 총각 아저씨가 완전히 반해서 몸이 달았었다. 나는 편지심부름을 도맡았고 두 사람은 잘 진척되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탈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었고 아저씨는 웃으며 용돈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의 부탁으로 아저씨가 나를 목욕탕에 데려가게 되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데려간 아저씨가 특별히 뜨거운 물을 그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낌새를 챈 내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다가 그만 붙잡혔다. 번쩍 들려 뜨거운 욕탕에 처박힌 나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탕에 들어온 아저씨는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낄낄대며 웃었다. 산채로 삼계탕을 당하는 닭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목욕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의 수육 상태가 되어서야 탕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새로 구입한 시퍼런 색상의 때수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 익어버린 살을 있는 힘껏 밀어대자 너무나 아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땅꾼에게 껍질이 벗겨지는 뱀도 나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상상을 몇 번이나 초월하는 초극한의 고통을 철철 넘치도록 음미한 다음에야 목욕이 끝났고 나는 벌벌 기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아저씨에게 용돈을 달라기는 커녕, 아예 슬슬 피해 다녔다.

성인이 된 다음 가끔씩 그 분을 만날 때마다 그때 목욕탕에서 봉변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껄껄 웃었다.


이제는 내가 아들의 때를 밀어줄 때가 되었다. 그동안 말 안 듣고 뺀질거린 대가를 톡톡히 치러줄 것이다. 복수는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인가? ㅎㅎㅎㅎㅎㅎㅎㅎ............................